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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영화

《A Complete Unknown》: 전설이 되기 전, 누구도 몰랐던 청년의 노래

by 치즈무비 2025. 4. 16.

– 주요 인물 소개 : 전설의 이름 아래, 사람들

《A Complete Unknown》은 밥 딜런이라는 상징적인 이름을 따라가면서도, 단지 한 사람의 성공기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밥 딜런의 곁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감정을 함께 담아냅니다. 딜런이 ‘전설’이 되어가는 그 시간 속에는, 그를 이해하려 했던 사람들, 밀어주던 사람들, 그리고 등을 돌렸던 사람들까지 모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인물들은 단지 조연이 아니라, 딜런이라는 인물을 완성시키는 하나의 리듬이자 화성처럼 다가옵니다.

가장 중심에 있는 인물은 물론 밥 딜런입니다. 미네소타에서 뉴욕으로 떠난 19세의 청년은, 포크 음악에 대한 순수한 동경만으로 도시를 헤맵니다. 처음엔 무명의 거리 뮤지션이었지만, 곧장 우디 거스리의 병문안을 시작으로 포크 씬 한가운데로 들어서게 되죠.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한 딜런은, 내면의 예민함과 예술가로서의 고집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단순한 인물 묘사를 넘어선 ‘시대의 감성’으로 자리합니다.

딜런 곁에는 늘 실비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딜런의 초기 연인으로 등장하는 실비는, 단순한 뮤즈의 위치를 넘어서 딜런의 정체성과 표현 방식에 중요한 자극을 준 존재입니다. 그녀는 그를 지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점점 유명세와 음악 사이에서 균형을 잃어갈 때 거리를 두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엘르 패닝은 이 역할을 통해 사적인 관계와 예술가적 갈등을 담담히 그려냅니다.

또 한 명 중요한 축은 피트 시거입니다. 포크 음악의 대부로서, 젊은 딜런의 가능성을 일찍이 알아본 그는 멘토와 같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딜런이 일렉트릭 사운드를 도입하려 하자, 두 사람의 음악적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납니다. 에드워드 노튼은 이 인물을 단순한 권위자로 그리지 않고, 음악에 대한 이상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고집스러운 예술가로 묘사하며 무게감을 더합니다.

딜런의 세계 확장은 조앤 바에즈와의 만남으로 이어집니다. 포크 씬의 중심에 있었던 그녀는, 딜런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음악의 지평을 연 인물입니다. 동시에 딜런과의 감정적 교류는 그가 점점 변해가는 과정에서 미묘한 균열로 이어지기도 하죠. 모니카 바바로는 이 역할을 통해 ‘비슷한 곳을 바라보되, 다른 방식으로 걸어가는 사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딜런의 과거를 상징하는 우디 거스리와, 그의 경력을 설계해준 앨버트 그로스먼, 전기 사운드로 전환을 이끌게 될 앨 쿠퍼 등이 주변에 포진합니다. 이들은 모두 딜런의 ‘변화’를 이끌거나 마주하는 위치에 서 있으며,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이자 길잡이처럼 다가옵니다.

《A Complete Unknown》은 밥 딜런이라는 한 인물의 이야기이지만, 결국엔 그를 둘러싼 수많은 인물들이 함께 연주한 ‘합주곡’에 가깝습니다. 이 영화는 조용히 말합니다. 전설은 혼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고요. 누구나 낯선 도시의 골목을 걷던 어느 날, 누군가의 말 한마디, 어떤 노래 한 줄이 방향을 바꿔놓는다고요. 밥 딜런의 음악 뒤에 선 이 이름들 또한, 그만큼 기억되어야 마땅합니다.

 

 

– 줄거리 요약 (스포일러 없음) : 낯선 도시, 익숙해지지 않는 마음

《A Complete Unknown》은 밥 딜런이라는 거장의 전기를 따라가지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위인전 같은 서사’를 택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오히려, 청년 딜런이 처음으로 세상을 마주했던 그 불안한 시간을 조용히 응시합니다. 아직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한 사람이, 음악이라는 세계 안에서 자기만의 목소리를 찾아가기까지의 내면적 여정을 담은 영화입니다.

1961년, 열아홉의 밥 딜런은 미네소타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로 향합니다. 딱히 확실한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단지 그의 우상이었던 포크 뮤지션 우디 거스리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 하나가 동력이 되었습니다. 그 뉴욕은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어딘가 차갑고 낯설었으며, 아직은 딜런이라는 이름을 아무도 알지 못하던 공간이었습니다.

그리니치 빌리지의 지하 공연장, 재즈 바, 거리의 음악가들 틈 속에서 딜런은 처음으로 ‘들리는 음악’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음악’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는 낮에는 클럽을 기웃거리고, 밤에는 노트를 채워가며 자신의 감정을 노래로 옮기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포크 음악계의 주요 인물들과 만나게 됩니다. 전설적인 활동가이자 음악가 피트 시거, 포크 씬의 신성 조앤 바에즈,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감성을 깊이 이해해주는 여성 실비까지. 이들은 딜런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때로는 갈등을 만들어내며 그를 새로운 길로 이끕니다.

딜런은 빠르게 포크 씬 안에서 주목을 받게 되지만, 그는 그 안에서조차 답답함을 느낍니다. 이미 굳어져버린 형식, 특정 메시지만을 기대하는 청중의 시선, 그리고 반복되는 멜로디. 딜런은 ‘사람들이 원하는 소리’와 ‘자신이 만들고 싶은 음악’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그는 전기 기타와 록 사운드에 매혹됩니다. 그것은 단지 음악적 전환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다시 묻는 계기가 됩니다.

하지만 그의 변화는 순탄치 않습니다. 동료 음악가들은 그를 비난하고, 기존 팬들은 등을 돌립니다. “배신자”라는 말까지 들으며, 딜런은 점점 혼자가 되어갑니다. 영화는 이 시기의 딜런을 단순히 흔들리는 청춘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믿는 소리를 고수하기 위해 외로움을 감내하고, 대중보다 자신의 감각을 먼저 신뢰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A Complete Unknown》은 그런 딜런의 ‘침묵과 고요’를 따라가는 영화입니다. 떠들썩한 성공이나 위대한 순간을 강조하기보다는, 그 순간을 준비하는 혼란과 내면의 충돌을 차분히 담아냅니다. 밥 딜런이 누구인가를 말하기보다는, 그가 무엇을 고민했고,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끝에 이르면, 관객은 어느새 이해하게 됩니다. 왜 밥 딜런이 수십 년간 세상과 어긋나면서도 자기 길을 걸어올 수 있었는지를. 왜 그의 음악이 지금도 들을수록 새롭고, 낯설고, 그래서 다시 듣고 싶어지는지를.

 

 

– 결말 요약 (스포일러 포함) : 야유 속에서 터진 진짜 첫 박자

영화의 마지막은, 밥 딜런이라는 이름이 단순한 신인이 아닌 ‘방향을 바꾸는 사람’으로 새겨지는 순간으로 귀결됩니다. 혼란과 충돌, 사랑과 이별,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던 그의 여정은, 한 번의 무대에서 정점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그 무대는, 동시에 완전한 이방인으로 남는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딜런은 수많은 갈등 끝에 결국 자신의 방식대로 음악을 연주하기로 결심합니다. 19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 전통적인 포크 팬들과 동료 뮤지션들이 잔뜩 모인 그곳은, 그에게 축하의 자리가 아닌 시험대가 됩니다. 그는 무대 위에 오르며, 오랫동안 손에 익히지 않았던 전기 기타를 꺼내 듭니다. 그리고 그 첫 박자가 울리는 순간, 관객석에서는 야유가 터집니다. 실망, 분노, 당혹감. 모두가 그를 이해하지 못한 채 고개를 젓습니다.

하지만 딜런은 연주를 멈추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소심했던 그는, 그날만큼은 이상하리만치 단호합니다. 익숙했던 ‘어쿠스틱 딜런’이 아닌, 지금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입니다. 그 안에는 설득도, 설명도 없습니다. 오직 음악으로만 자기 자신을 말합니다. 그 장면은 누군가에겐 파격이었고, 또 누군가에겐 배신처럼 보였지만, 그날 이후 밥 딜런이라는 이름 앞에는 ‘변화’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붙게 됩니다.

공연 이후, 딜런은 우디 거스리를 마지막으로 찾아갑니다. 병상에 누워 더 이상 말조차 할 수 없는 우디 앞에서, 딜런은 자신의 노래 한 곡을 조용히 들려줍니다. 세상과 맞서 싸우고, 변화에 맞서는 일은 그 스승으로부터 배운 감각이었습니다. 말 대신 노래로 건네는 마지막 인사. 그 장면은 말수도, 감정도 많지 않은 딜런이라는 인물의 가장 진심 어린 장면으로 다가옵니다.

이후 영화는 그가 모터사이클을 타고 도시를 벗어나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더 이상 화려하지도 않고, 거창하지도 않은 퇴장입니다. 하지만 그 뒷모습엔 ‘무언가를 이룬 사람’이 아닌, 여전히 자신의 길을 찾고 있는 한 사람의 뚜벅뚜벅한 걸음이 담겨 있습니다. 정해진 길을 따르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의, 그 고요한 고집이죠.

영화의 말미, 자막은 조용히 관객에게 그 이후의 시간을 덧붙여줍니다. 딜런은 이후 55장의 앨범을 발표했고, 수많은 음악인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결국 201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하지만 《A Complete Unknown》은 그 ‘결과’의 위대함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위대한 결과가 태어나기 직전의 어설픈 선택들, 불완전한 순간들, 그리고 끊임없이 낯설기를 감수했던 결정들을 응시합니다.

이 영화의 결말은 그런 점에서 매우 ‘조용한 혁명’처럼 느껴집니다. 화려한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는 대신, 자신이 꺼내든 소리 하나를 끝까지 지켜보는 방식. 밥 딜런이 그토록 많은 오해와 거부를 감수하면서도 걸어간 길이, 결국 자신을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이 마지막 장면이 조용히 증명해 줍니다.

《A Complete Unknown》은 그렇게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기타 소리는,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도 오래도록 귓가에 머뭅니다.

 

 

– 감상평 및 총평 : 아무도 아닌 청년이, 세상을 흔든 순간까지

《A Complete Unknown》은 밥 딜런이라는 거대한 이름을 조용히 되짚는 영화입니다. ‘전기 영화’라는 이름 아래 기대할 수 있는 영광, 성공, 업적의 서사는 이 영화의 중심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오히려 거대한 이름이 되기 전,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청년 로버트 짐머맨이 자신을 밥 딜런으로 빚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그것도 아주 절제된 시선으로, 때로는 말보다 침묵으로, 음악보다 분위기로 보여줍니다.

티모시 샬라메는 이 영화의 핵심이자 전부입니다. 그는 밥 딜런을 ‘재현’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시기의 딜런이 무엇을 갈망했고, 무엇을 두려워했으며, 왜 그렇게 세상과 어긋나려 했는지를 감정의 진폭으로 보여줍니다. 특정 장면에서는 딜런 특유의 낮은 음성과 고개 숙인 자세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건 감정을 억누르고 조용히 흘려보내는 방식의 연기입니다. 관객은 그 침묵 속에서 딜런의 결심을 읽고, 그 무표정한 얼굴에서 내면의 격동을 느끼게 됩니다.

이 영화는 상업적 장치도, 감정적 폭발도 거의 없습니다. 갈등은 있지만 드라마틱하지 않고, 관계는 얽혀 있지만 명확한 로맨스나 파국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비워낸 선택’들이 오히려 이 이야기를 더 현실적으로 만듭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인물들도, 사실은 스스로도 잘 몰랐던 길을 두려워하며 걸었을 테니까요. 《A Complete Unknown》은 바로 그 ‘모를 수밖에 없는 시기’를 진심 어린 시선으로 따라갑니다.

음악적 요소 또한 뛰어납니다. 영화는 딜런의 대표곡들을 과시적으로 나열하지 않고, 그의 변화의 지점마다 음악이 어떤 방식으로 등장했는지를 천천히 풀어냅니다. 특히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 장면은 단지 공연이 아닌, 한 인물의 선언문처럼 다가옵니다. 그 한 곡, 그 한 박자가 어떤 감정으로 연주되었는지에 집중하는 연출은, 이 영화가 얼마나 ‘음악 그 자체’를 이해하려 애썼는지를 보여줍니다.

관객으로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 영화가 딜런을 미화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때로 이기적이고, 고집스럽고, 이해받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진심을 모두 말하지 않고, 조언하는 이들에게도 끝까지 반기를 듭니다. 하지만 그 태도 안에 예술가로서의 자존과 방향성이 숨어 있다는 걸 영화는 포기하지 않고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가 겪는 외로움과 불안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기록합니다. 바로 그 점에서 이 영화는 ‘딜런을 다룬 영화’이자, ‘모든 예술가의 시작을 다룬 영화’가 됩니다.

《A Complete Unknown》은 밥 딜런이라는 아이콘을 이해하려는 영화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가 왜 끊임없이 낯설어지려 했는지, 왜 세상의 기대를 거부했는지를 조용히 묻는 영화입니다. 정해진 박자에 맞추지 않기로 한 한 청년이, 마침내 자신만의 리듬을 완성해가는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는, 비단 밥 딜런만의 것이 아닙니다. 아직 자기만의 목소리를 찾지 못한 누군가에게도 분명히 닿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