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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발레리나》 영화리뷰|결말포함|복수와 슬픔이 교차하는 감성 액션

by 치즈무비 2025.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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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인물 소개 : 복수의 무대 위, 고요하게 타오르는 분노

《발레리나》는 복수라는 익숙한 테마를, 슬픔과 침묵으로 연주하는 잔혹한 서사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그 중심에는 옥주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녀는 전직 보디가드 출신으로, 냉철하고 치밀하며 폭력에 망설임이 없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단순한 킬러의 삶이 아니라, 하나의 ‘슬픔’을 품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옥주의 감정선을 절대 격렬하게 터뜨리지 않습니다. 대신, 감정이 고요하게 맺힌 분노로 응고된 채, 서늘한 복수의 리듬을 따라갑니다. 옥주의 감정은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그 조용한 흐름이 오히려 관객의 심장을 두드립니다.

옥주의 복수 대상은 최프로, 극 중 불법 성매매를 조직하고 조종하는 인물입니다. 최프로는 단지 악역이라기보다, 옥주의 친구 민희를 죽음으로 몰고 간 책임의 화신처럼 묘사됩니다. 그는 정제된 말투와 표정을 지닌, 전형적인 ‘깨끗한 폭력’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권력과 잔혹함을 아주 세련되게 포장하는 인물입니다. 김지훈은 이 인물을 차갑고 섬뜩한 분위기로 표현하며, 대사보다 태도로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옥주의 복수의 시작점이자, 이 영화의 서사를 지배하는 실질적인 존재는 민희입니다. 그녀는 이미 죽은 상태로 등장하지만, 영화의 정서적 중심은 오롯이 그녀의 부재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민희는 발레리나였고, 옥주와는 생전에 깊은 유대감을 나눈 사이였지만, 복잡한 사회적 구조 속에서 끔찍한 일을 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민희가 남긴 유서 한 장이 옥주를 움직이게 하며, 그 안에는 “널 믿었다”는 단 한 줄이 모든 감정의 불씨가 됩니다.

옥주의 인물은 기존 여성 복수극과 다릅니다. 울부짖지도, 광기를 표출하지도 않지만, 그 침묵 속에서 느껴지는 상실감과 고요한 결의가 인상적입니다. 그녀는 복수 그 자체보다, ‘죽은 친구의 억울함을 대신해 살아내는 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완성해갑니다.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적들과의 액션 장면 또한, 감정을 토로하는 방식이 아닌, 철저히 기능적이고 무표정한 폭력으로 연출됩니다.

《발레리나》의 인물들은 모두 말이 적습니다. 하지만 그 침묵은 허전함이 아니라 말보다 강한 진심으로 다가옵니다. 이 영화는 분노보다 그리움을, 폭발보다 응시를 통해 복수극을 완성해나갑니다. 그리고 그 인물들의 태도는 단지 서사의 장치가 아니라, 슬픔이 끝까지 잊히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방식이 됩니다.

 

 

– 줄거리 요약 : 너의 죽음에, 내가 살아남은 이유를 묻는다

《발레리나》는 철저히 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전직 보디가드 옥주는 어느 날, 유일한 친구였던 민희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됩니다. 민희는 생전에 발레리나였고, 옥주와는 무언의 유대를 나눈 친구였습니다. 그녀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옥주는 한 통의 유서를 발견합니다. 거기엔 단 하나의 문장만이 적혀 있습니다. “옥주야, 미안해. 부탁이 있어.”

이 짧은 문장은 옥주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습니다. 그녀는 복수라는 이름의 이유를 만들어내고, 민희의 마지막 흔적을 따라 어둠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영화는 민희의 부재를 중심으로, 옥주가 세상과 다시 마주하는 과정을 그려가기 시작합니다. 복수가 시작되기 전, 영화는 옥주의 삶을 거의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어떤 과거를 가졌는지, 무엇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지도 나오지 않지만, 그녀의 걸음걸이와 눈빛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많은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게 됩니다.

민희가 남긴 흔적은 점차 최프로라는 인물로 수렴됩니다. 그는 불법 성매매를 조장하며, 외부적으로는 아무 문제 없는 얼굴로 세상을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민희는 그의 유인에 빠져,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짓밟혔고, 끝내는 모든 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습니다. 옥주는 그 모든 과정을 역추적하며, 민희가 겪었던 공포와 절망을 복기의 방식으로 체화해 갑니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은, 복수가 감정의 해소가 아니라 정서의 기록이라는 방식으로 그려진다는 점입니다. 옥주는 결코 감정적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녀는 분노도 슬픔도 쉽게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그 모든 감정을 눌러가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갑니다. 폭력을 선택할 때조차 그녀는 흔들리지 않으며, 죽음 앞에서도 어떤 허세나 두려움 없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처리해 나갑니다.

옥주의 여정은 민희의 흔적을 따라 움직입니다. 민희가 자주 가던 공간, 남긴 문자, 마지막 통화 기록. 그리고 그 흔적이 도달한 곳에서 옥주는 자신이 지금 ‘누구를 위한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 처음으로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복수는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 복수의 과정을 통해 죽은 사람의 삶을 다시 살아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발레리나》는 단순한 ‘여성 킬러 복수극’이라는 틀을 넘어, 사랑과 상실, 슬픔과 분노가 어떻게 삶의 방향이 될 수 있는지를 조용히 증명하는 작품입니다. 액션 장면은 감정을 대변하기보단, 감정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방어처럼 쓰이고, 그 절제된 연출이 오히려 더 깊은 정서를 만들어냅니다. 영화는 복수의 완성보다 그 복수가 어떤 마음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끝까지 응시합니다.

 

 

– 결말 요약 : 너를 지키지 못한 죄, 너를 위해 완성한 복수 (스포일러 포함)

옥주의 복수는 아주 조용히 시작되었지만, 끝으로 갈수록 점점 더 명확하고 잔인해집니다. 민희의 유서 한 줄, 그 문장에 담긴 절박함과 신뢰는 옥주를 움직이게 한 단 하나의 동력입니다. 그녀는 민희가 겪은 일을 그대로 따라가며, 그녀가 왜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전부 체감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단순한 분노를 넘어 자신이 지키지 못한 죄에 대한 속죄로 바뀌게 됩니다.

옥주는 철저히 계산된 방식으로 최프로의 조직을 하나씩 무너뜨리기 시작합니다. 그의 부하들과 관련 인물들을 차례로 처단하며, 흔적을 남기지 않는 치밀한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옥주의 고통과 분노보다, **슬픔이 응고된 ‘차가운 의지’**를 더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녀는 울지도, 소리치지도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뿐입니다.

최프로는 옥주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자신이 처한 현실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는 사회적으로는 깨끗하고, 겉으로는 법과 질서를 따르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약자와 여성의 삶을 상품화해온 가해자입니다. 옥주는 그에게 단 한 번의 자비도 없이 다가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민희가 죽기 전 겪었을 공포와 침묵, 저항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시간을 되돌려주는 방식으로, 그녀만의 복수를 완성합니다.

이 장면에서 폭력은 일종의 상징입니다. 그것은 단지 피를 흘리는 장면이 아니라, 죽은 자의 말을 대신 전하는 행위로 사용됩니다. 옥주는 최프로에게 민희의 존재를 새기게 하고, 그에게 죽음이라는 마지막 대가를 치르게 하며, 복수의 결말을 맺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승리 앞에서 기쁨을 느끼지 않습니다. 되돌릴 수 없는 사실이 하나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민희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옥주는 민희의 무덤 앞에 선 채, 마지막 인사를 건넵니다. “미안해, 내가 너무 늦었지.” 이 대사는 모든 복수의 과정을 정리하는 동시에, 그녀가 복수를 통해 진짜 얻고자 했던 것이 ‘죽음’이 아니라 ‘전달되지 못한 진심’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나서야 옥주는 비로소, 민희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요하게 전할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 장면, 옥주는 민희의 발레 슈즈를 들고 그녀가 좋아했던 공간에 앉아 있습니다. 복수가 끝난 후, 그녀는 더 이상 무기를 들지 않습니다. 그녀가 들고 있는 것은 단지 기억, 그리고 약속을 지켰다는 작은 안도감뿐입니다. 영화는 폭력으로 시작했지만, 그 끝은 다시 감정의 무게로 돌아옵니다. 살아남은 자가 떠난 자를 대신해 끝까지 걸어가야 하는 길, 《발레리나》는 그 길의 끝에서 아주 조용한 인사를 남깁니다.

이 결말은 복수의 성공이 아닌, 슬픔의 완성과 감정의 해소로 이어지며, 관객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대신 짊어진다는 것, 그것은 진짜 구원이 될 수 있을까?” 그 질문의 답은 영화가 내리지 않습니다. 대신, 남은 침묵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곱씹게 만듭니다.

 

 

– 감상평 및 총평 : 가장 조용한 복수가, 가장 깊은 슬픔이었다

《발레리나》는 익숙한 복수극의 문법을 따르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전혀 다릅니다. 이 영화는 누군가를 죽이는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를 지키지 못한 마음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누구보다도 조용한 얼굴로 분노를 품은 주인공 옥주가 말없이 보여줍니다.

옥주는 ‘강한 여성’의 이미지를 기반으로 서사 중심에 놓인 인물이지만, 그녀는 결코 외쳐 싸우지 않습니다. 그녀의 분노는 말이 아니라 시선과 호흡, 그리고 선택의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그 침묵의 묵직함입니다. 대사 없이도 느껴지는 감정, 액션 속에 스며든 애도, 복수의 끝에 남는 공허함이 영화 전반에 짙게 깔려 있습니다.

민희라는 존재는 영화 내내 등장하지 않지만, 그 부재 자체로 누구보다 확고히 존재합니다. 그녀의 흔적은 옥주의 걸음과 시선, 복수의 경로를 따라 살아 움직입니다. 죽은 자의 이름으로 살아남은 자가 세상에 질문을 던진다는 것. 그 구조가 이 영화의 정서를 지배하고 있으며, 단순한 스릴이나 쾌감 이상의 여운을 남깁니다.

폭력은 여기서 해소의 도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폭력은 감정을 감추기 위한 위장처럼 보입니다. 옥주는 복수를 통해 민희를 다시 데려올 수 없다는 걸 압니다. 그럼에도 복수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이유는,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을 끝까지 실천하는 방식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은 찢어지게 아프지만, 동시에 숭고합니다.

《발레리나》는 극적인 장면보다, 그 장면 사이의 공기와 정적이 더 오래 남는 영화입니다. 무엇을 보여주는지보다, 무엇을 보여주지 않는지가 더 많은 감정을 전달합니다. 민희의 유서 한 장, 복수의 완성 이후 놓이는 발레 슈즈, 눈빛만으로 전해지는 슬픔. 그것들은 말보다 강하고, 침묵보다 깊은 메시지를 남깁니다.

결국 이 영화는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한 사람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그 시작은 복수가 아니라, 그 복수 이후에도 남아 있는 기억의 무게를 끝까지 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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